Chefoo는 연대(煙臺)인가 지부(芝罘)인가?

  옌타이(煙臺 ; 연대)는 동이족의 거주지였다. 하나라 시대 나라를 세웠다고 말해지고 있다. 은나라, 주나라를 거치면서, 춘추전국시대에는 제나라 영토가 되었다. 진나라 때에는 제군에, 전한 시대에는 동래부가 되었다. 수나라 시대에는 래주(萊州)에, 당, 송, 원나라 시대에는 래주가 등주로 되었다. 명, 청의 시대에는 래주부가 되었고, 후에 또 다시 등주부(登州府)가 되었다. 

  한때는 서양 열강에 개방된 항구 중의 하나였고, 조계지로 사용되기도 하여 즈푸(芝罘) 섬 때문에 체푸 (Chefoo)로 서양 열강에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의 옌타이란 이름은 1398년에 명나라 홍무제의 통치기간에기산에 세워진 봉수대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858년 7월, 청은 톈진조약을 맺고, 등주는 옌타이라고 개명되고, 서양 여러나라에 개항되었다. 옌타이는 1861년 5월에 외국의 굴복으로 개항하지만, 정식으로 국제 무역항이 된 것은 둥하이관 요새가 준공된 8월 22일이었다. 

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서양에게 알려진 Chefoo는 연대도 아니고 지부도 아니다.

이름은 治府(치부) 였고,  廣州浦(광주포)의 治府(치부)를 Chefoo라고 불렀다 한다.

  foo또는 fou는 浦를 의미하는 것.


  Chefoo와 엮인 역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하나하나 다 따지자면 그 끝이 없을 지경이고, 1950년 이전에 등장하는 모든 Chefoo 관련 역사는 차라리 1950년 이전의 모든 한반도 역사가 동남아에 있었다고 가정하는것이 불필요한 반복 확인작업을 피할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던 Chefoo convention.(中英煙臺條約)은 중공이 대륙을 점거하기 위해 Chefoo를 煙臺라고 날조해서 중문 조약명이 저렇게 되었다. 

  한국 역사에서 Chefoo와 연대, 산동, 즈푸와 엮인 여러 역사들은 거의 대부분 동남아에서 있었던 일을 중공이 지명을 이동시켜 날조해 낸것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반도의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확인한다.

  물론 東夷族(동이족)도 현재의 연대 혹은 산동과 전혀 관련을 갖지 않는다.

  동양의 방위체계는 다음과 같이 "上南下北 左東右西(상남하북 좌동우서)" 이므로, '東夷' 라는 말에 전혀 집착할 이유가 없다.



  하이난(海南)에 살던 黎族(려족)이 활을 즐겨 쓰던 오랑캐(夷) 임.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는 역사조작을 위해 강제로 주입된 교육의 산물일 뿐.

 

  역사가 사라졌다고 흥분하지 말자.  찾으면 되니까.

댓글

  1. 이제 화도 나지 않는다는..
    하루 빨리 롤백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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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첨 방문했는데 재밋는 글이 많네요 고려가 복건성이 중심이였다면 믿으시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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