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실린 이미지는 알아보기 쉽도록 고해상도 이미지로 하였습니다.
어느날, 이상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日 가족 3대가 보물처럼 지켜온 3·1 독립선언서… 100년 만에 고국으로 (조선일보 2019년 5월 29일)
평양에서 배포된 독립선언서의 원본이 일본에서 나타났다는 기사.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 (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 까지의 첫줄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기미년(1919) 독립선언문.
그런데, 이 유명한 독립선언서의 첫줄부터 오자가 있단 이야기도 곁들여져 있다. '朝鮮'이 아니라 '鮮朝'로 되어 있었다는 것. 천도교 월보를 발행하던 "보성사"에서 찍은 1차 인쇄분이 잘못된거고 2차분부터는 제대로 朝鮮으로 찍혔을 것이라는 설명도 함께.
'독립선언서'라 하면서 감히 오자확인도 안하고 배포하다니? 그래서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보성사의 사장 이종일의 ‘묵암비망록’에 따르면, 최남선의 출판사인 '신문관' 에서 조판된걸 가져다가 4일동안 2만 5천장을 찍었다 한다.
독립선언서 인쇄 현장 덮친 악질 조선인 형사… 거금 주고 무마
그리고, 1차분의 오자 "鮮朝"를 "朝鮮"으로 고친 2차분 1만장을 추가로 인쇄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지정기록물 해설에서는 "(「독립선언서」)는 신문관에서 조판하였으나 그 조판의 짜임이 좋지 않아 보성사에서 다시 조판하여 인쇄한 것이며, 보성사판에는 국호가 "鮮朝"로 바뀌어 있다." 고 되어 있다. 국가지정기록물 해설과 보성사 사장의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게다가 독립기념관의 설명에는 보성사의 인쇄물이 2만 1천장으로 되어 있다.
'朝鮮' 오자에 관련된 이야기는 최남선의 신문관 조판, 신문관 조판이 조잡해서 새로 조판했다는 보성사의 1차인쇄, 그리고 오타를 수정했다는 2차인쇄까지 세가지 버전이 있고, "손병희는 이종일에게<독립선언서>를 직접 인쇄·배포했으니 크게 낭독하라 하여 오자를 고치고 낭독하였다." (이종일,≪묵암 이종일 비망록(4)≫, 229쪽.)고 한다.
이종일이 낭독을 한 선언서는 태화관에서 낭독한 보성사 2차 인쇄본이었고, 여기에서 오자를 고치고 낭독했다는 것. 2차인쇄본에 선조라고 되어 있었다는것인가?
조선 - 선조 - 조선으로 변경된 것인지, 선조 - 조선 - 선조로 변경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고, 기록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것 쯤이야 너무너무 석연치 않지만 일단 넘어가자.
어쨌든, 이 독립선언서는 해외로도 번역되어 알려졌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독립선언문이 어떻게 번역되었을지 찾아보기로 하자.
기미독립선언서 해외로 어떻게 전파됐나
위 기사에서도 나와있듯이, '하와이판', 그리고 '미국판'이 존재한다. 실제로 어떻게 실렸는지 찾아보자. 과연 "鮮朝"가 오타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동아일보는 어디에 실린 것인지 정확히 모른 듯 하다. 신문명이 '애드버타이저'라니?)
하와이판 전문을 보자.
아쉽게도 我鮮朝이 KOREA로 번역되어 있다. 국호가 선조인지 조선인지 불분명하긴(?) 하지만 참고 더 읽어보자.
이상한점은 영문판에서도 발견되는데, 두번째 문단이다.
We have no desire to accuse Japan of breaking many solemn treaties since 1636, nor to single out specially the teachers in the schools or government officials who treat the heritage of our ancestors as a colony of their own, and our people and their civilization as a nation of savages, finding delight only in beating us down and bringing us under their heel.
병자수호조규이래 시시종종의 금석맹약을 식하였다 하야 일본의 무신을 죄하려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조종세업을 식민지 시하고 아문화민족을 토매인우하야 한갓 정복자의 쾌를 탐할 뿐이요, 아의 구원한 사회기초와 탁영한 민족심리를 무시한다 하야 일본의 소의함을 책하려 아니하노라. [중앙일보] 독립선언문(원문) (중앙일보가 독립선언문인지 독립선언서인지 잘 모르는건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날조 일 뿐이니)
병자수호조규가 언제부터 1636년이 되었을까? 우리는 저 병자수호조규가 1876년인줄로 알고 있었다. 240년의 시차는 과연 오타일까?
이상한점은 맨 마지막 민족대표 명단에서도 나타난다.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례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손병희 이름이 Song Tyung Hi가 된 건 애교고, 나머지 명단의 이름도 어마어마하다. 이 독립선언서의 번역은 누가했을까?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최소 다섯종류의 번역본이 존재하며,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에 실린 번역은 누가 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3·1독립선언서 영문 번역본, 최소 다섯 종류 있었다" 연합뉴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니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지만, 그런건 부수적인 문제고, 과연 1636년은 오타일까?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패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에 실린 문장은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라고 한다. 덧붙여 '1919년 3월 28일 호놀룰루 발행 영자지 (제호미상)' 이라고 사기를 치고 있다.
기록인2016 SPRING + Vol.34, "국가지정 기록물이 된 3.1운동 독립선언서" 이정은(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기고문 중에서
다들 왜 감추려는걸까? 기사는 "The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에 실렸다. 전면을 옮긴다.
국가기록원이 이렇게 쉽게 알 수 있는 출처를 고의로 감추고 있다. 왜 그럴까? 뿐만 아니라, 번역을 대한인국민회에서 했다며 인명의 번역이 발음과 괴리되는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과연 하와이의 '대한인'은 한글 발음을 저렇게 했던 것인가? 한글/영문 모두 '표음문자'라는걸 상기하자.
국가기록원이나 다른 여러곳에서도 '더 패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에 실린 '독립선언서 영문판'의 1636년은 1876년의 '오타' 로 취급하고 있다. 240년이라는 절묘한 숫자, 1636년도 역시나 병자년이란건 '우연의 일치'로 치기로 하자.
우리는 이 1636이라는 숫자를 다른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보내진 독립선언문 담긴 외교문서 발견 (한국일보 ; 2019년 2월 24일)
우드로 윌슨이 받았다는 문서를 한번 보자.
전체 모양은 이렇고, 문제의 1636년 부분을 찾아보자.
이미지 해상도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1636을 식별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우드로 윌슨에게도 1636년 Korea와 Japan이 맺은 조약이 있다고 어필하고 있다. 심지어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서 번역했다는 문장과 100% 동일하다.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지는 문서를 아무런 검토 없이 전해준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는 병자년은 1876년이 아니라 1636년인 것인가. '우연'이 2회 겹쳤다. 또한 이 문서는1919년 6월 3일에 전해진 것. 오탈자 수정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문서는 도대체 누가 우드로 윌슨에게 전해 줄 수 있었을까? 매우 간단히 추측할 수 있다.
"이승만" - 이승만은 1919년 미국에 있었고, 우드로 윌슨의 제자다.
그렇다면 이 번역을 누가 했을까? 10 중 8,9는 '이승만'
" 독립선언서 문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의 독립선언서보다 더 잘 지었다”고 격찬할 정도로 명문이었다. 독립선언서를 읽어본 사람들은 “육당(최남선)을 다시 보아야겠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유광렬의 ‘나의 이력서’, 한국일보 1974년 3월 5일자)
이승만은 독립선언서 문장을 보았고, 본인이 번역해서 전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연 이승만에게 병자수호조규는 "1636년"에 맺어진 것이었을까?
아니라면, 과연 이승만은 미국에 있긴 했던 걸까?
이승만의 기록은 과연 진짜일까?
독립선언서가 날조된 것이라면 어쩔텐가?
다음 만평을 다시 보자.
타코마 타임스에 실린 만평 중 Emperor of Korea 가 데려가는 네명의 여자. 예전엔 세명이 조선, 일본, 중국인인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이젠 네번째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귀걸이를 달고 있는게 아니다. 귀를 뚫은것.
얼굴에 주름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얼굴에 문신한 것.
우리가 배운 역사가 우리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영문 독립선언서는 '광고지'에 실렸다.
"전면 기사형 광고"였다면 어쩔텐가?
역사가 하루 빨리 롤백되기를..
답글삭제1.7년 내로 되면 좋겠다..
17년은 넘흐 길다..
수레에 타고있는 여자(?)는 모두 네명이 아니고, 분명히 다섯명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중국(조선)여자옆 원주민(얼굴문신)여성 앞에.....검은색 삼각모자( 터키식 검은모자 ?)를 쓰고있는 작은 사람이 보입니다. 강포에 쌓인 아이라고 보기엔 덩치가 더크고, 성인여성으로 보기엔 작습니다. 사실, 여성인지조차 성별구분은 안되구요. 그냥 좀 작은 사람.....정도가 맞는 설명같습니다.
답글삭제그리고, 수레의 맨뒤에 탄 여자는 '베트남.안남'여자 같습니다. 베트남의 마지막왕조가 李/LEE왕가이고, Korean War이후에 VietNam War가 따른 것도 조선계열이라( 고려조선계를 몰살함)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