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북경이 '경성'이었다는 사실을 지난 포스팅에서 알아보았습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건 참 좋은 일입니다만,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가 '조작'되었다는것도 함께 알아냈기 때문에, 원래의 역사를 찾아가는게 쉬운일만은 아니게 된 듯 합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진짜 역사의 부스러기는 찾을 수 있겠죠. 기록을 좋아하던 민족이라 어디 다녀오면 일기쓰는게 일이었던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이라든가, 표해록(漂海錄)이라든가 하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죠. 물론 정사가 아니라서 손을 덜 탔을거라는 가정이 필요하긴 합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건 참 좋은 일입니다만,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가 '조작'되었다는것도 함께 알아냈기 때문에, 원래의 역사를 찾아가는게 쉬운일만은 아니게 된 듯 합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진짜 역사의 부스러기는 찾을 수 있겠죠. 기록을 좋아하던 민족이라 어디 다녀오면 일기쓰는게 일이었던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이라든가, 표해록(漂海錄)이라든가 하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죠. 물론 정사가 아니라서 손을 덜 탔을거라는 가정이 필요하긴 합니다.
최부의 표해록을 보면,
앞 포스팅에서 한민족이 반도에 살고 있지 않았다는걸 알았습니다. 당연히 최부가 있던 제주도 지금의 제주도가 아닙니다. 1905년의 제주도 이름은 Quelpart였습니다.
제주에서 의주를 가겠다는 사람이 표류해서 복건성 복주 근처에 가서 상륙해 의주까지 가게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과학의 힘은 1900년대의 거짓말따위 깔끔하게 깨 줍니다.
최부는 제주에서 출발해서는 절대로 대만 앞의 복주까지 떠내려갈 방법은 없습니다. 제주가 대만보다 아래쪽에 있으면 모를까 불가능한 이야기죠.
이렇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륙과 대한제국 역사와 지명을 맞춰보고 있는 와중, 일본 Qanon이 희한한 문서를 갖고 옵니다.
그리고 잘 안보이는 저 부분을 확대해 보니까...
그리고 이 만평에서 하나 더 무서운 사실은, 이후 45년동안 쓰이지 않을 이름, 2차대전 후 미 군정이 들어와서야 쓰이게 되는 'SEOUL'이라는 표기가 1904년에 이미 들어있다는거죠.
영국 관보인 런던가제트 1874년 8월 11일자. |
그리고 잘 안보이는 저 부분을 확대해 보니까...
1874년 8월 11일 관보 부분확대 |
여왕년이 이미 1874년에 중국황제와 일본천황을 정복하셨네요.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사에서는 대한제국의 멸망이 1910년이고, 일본제국은 멸망한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물론 청나라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망한것으로 되어 있죠.
도대체 저기 나온 나라는 어느나라를 말하는것일까요?
어제 알아본대로, 한일 병합조약은 '위조문서'죠. 즉, 있지도 않았던 한일병합조약을 만들어서 여왕과 반도 토착왜구 - 열도왜구들의 고려 조정에 대한 역적질을 감추려 했을듯 합니다.
`병합조약' 韓日 필적 동일…"무효 증거" - 연합뉴스 |
할수 없이 여왕년 관보에 나온게 맞다고 인정해 줘야겠습니다. 진짜 승자의 법 제정을 위한 기록일테니까요. 저건 1874년에 이미 점령이 끝난 지역에 대한 통치력 행사에 관한 의회의 법률제정기록이니 최소 1874년까지는 China와 Japan은 점령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일전쟁은 '쇼', 러일전쟁은 '대리전'인가요?
청일전쟁의 결과는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한 '대만섬과 요동반도의 할양'.
그러나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으로 요동반도는 도로 토해내게 됩니다.
그런데, 저 '청'나라가 과연 'China'일까요?
이미 우리는 앞에서 알아본 바 와 같이, 1897년 아관파천 후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그 건물들이 지금도 북경에 남아 있구요.
청일전쟁의 주 전장은 다음 지도와 같이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 지도에 의존할 필요가 없죠.
상상력을 발휘할 시간이 왔습니다.
'청일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쟁에서, 일본은 '제물포'로 상륙합니다.
제물포로 상륙중인 일본군입니다. 그러나, 배경으로 보이는 것 과 같은 높은 산과 섬은 인천의 제물포에는 없죠.
제물포는 반도의 지명이 아닙니다. 현재의 지명은 복건성 복주.
양무운동시기 복주 선정국 |
개항시기의 제물포 |
그러므로, 복건성 복주로 일본군이 상륙하였다 하면 청일전쟁의 결과로 '대만섬'이 할양되는 결과가 이해됩니다. 당시 청군은 '아산'으로 접근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동학란'을 염두에 두었기도 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청군이 한반도로 이동한 것일리 없죠. 동시기 대륙에선 '의화단의 난'이 있었습니다. 청군은 의화단 + 백련교도들과, 열강 8개국과 맞서 싸웠죠.
이 지도가 입수된것이 이때 연합군에 의해 경성이 함락되면서였으니, 이런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황성을 점령하게 되죠.
결국 이꼴을 보고 맙니다.
그림 두장 보시겠습니다. 당시 의화단은 서양인만 보면 목 자르고 잡아 죽이고 구워 먹기도하고 삶아먹기도 하고 별 희한한 만행을 다 저지른것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둘 다 의화단의 난을 그린 그림인데... 가만 보니 아래 그림은 '왜구'들이네요?
왜구들이 1900년대 초 대륙 남부에 살고있었다는 증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군요.
이렇게 해서 '청일전쟁'은 의화단의 난과 동학란, 연합군의 경성 점령을 다 합쳐버린 모습이 됩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대만을 일본에게 할양하게 됩니다. 과연 일본은 어디있었을까요?
의화단의 난이 진압된 후 각 열강의 대륙 지배구조를 봅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배는 열도와 반도, 그리고 대만섬입니다.
실제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일본은 반도 전체와 만주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대만섬 앞의 제물포(복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죠.
'반도'에는 누가 살고있었을까요.
아무런 전쟁 없이 왜 반도가 일본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을까요.
이 문서대로라면 중국 황제와 일본 천황은 이미 1874년에 영국에 복속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왜구'가 개입한게 틀림 없어보이는데, 한반도의 지배세력들이었던 토착왜구들이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들고 열도인들과, 만주인들과 손잡고 영국여왕에게 모든걸 갖다 바친모양이 예상이 됩니다. 안그러면 전쟁없이 한반도가 일본지배하에 있다는건 설명이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대한제국은 언제 한반도로 쫓겨나게 되었을까요?
여왕이 경성을 금지(Forbidden) 한 1904년이겠죠. 이 만평과 함께 쫓겨났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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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은 '경성'이었습니다.
이 시기, '1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전쟁 후 정산해보니 러시아제국, 오스트리아 - 헝가리제국, 독일제국이 망해 사라졌군요. 아까 보신 의화단과 청군을 제압한 연합군에서 남은건 영, 미, 프, 일 네개 나라 뿐입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영 - 미 - 일은 같은 주인을 섬기죠. 그렇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륙과, 반도와, 열도가 모두 여왕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대한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심지어 '조선'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름까지 붙이고, 반도로 지명과 건물들을 모두 이전해 가며 예전의 역사를 모두 말살시켜버리죠. 두번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또한, 역사를 말살해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민족이 가진 사서는 서양의 역사서를 깡그리 거짓말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서양 역사는 '성경'에 맞춰 쓰여진 조작의 결과일 수 밖에 없거든요.
이렇게 해서 '빅토리아여왕'이 재위하던 시절 영국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저지른 만행 - 심지어 연합국마저 모두 붕괴시켜버리는 - 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감춰진 역사를 보고 배웁니다.
답글삭제조작된 역사가 다 밝혀질 그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