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만평으로 시작해 봅니다.
고려 황제가 경성(북평)을 떠나 서울로 쫓겨나는 장면.
그런데 낯이 익습니다.
미 의회도서관에 보관된 1907년 고종의 초상화.
1907년 우리에게 알려진 고종은?
헤이그 특사사건을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1910년 이태왕으로 격하되어 덕수궁에 유폐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위에 안경쓴 사람과 이 사람이 동일인이라구요?
아닙니다.
1. 이름이 다릅니다.
Kojong과 Gojong은 같은 이름이 아닙니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 아냐? 하겠지만, 영어권에선 스펠이 다르면? 다른사람입니다.
2. 1904년 만평과, 1907년 초상은 거의 동일합니다. 안경마저도. 하지만 1904년의 Gojong은? 넌 누구세요? 수준.
더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뭘 알고 놀리는건지....
Emperor라고 적고는 대원군의 사진을, emperor라고 소문자로 적고는 고종으로 알려진 사람의 사진을 싣고 있네요.
고종을 찾아야겠습니다. 뭔가 속았는데 속아줄 수는 있지만 속고 살 수는 없죠.
고종 생몰년도 (1852-1919)
저 사진이 찍힌 시기는 1904-1907
1904년이면 52세군요.
생몰년도만 보면 저 자리몽땅이 고종입니다.
대원군의 생몰년도 (1821-1898)
그런데 장례에 아들이 불참합니다. 그리고 장례를 1907년에 다시 왕의 예를 갖추어 다시 치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역사의 부스러기가 존재하죠.
짜리몽땅고종의 휘는?
휘는 형(㷩), 초명은 재황(載晃)
고종의 친형인 흥친왕의 휘는?
휘는 희(熹), 초명은 재록(載錄)
일단 답부터 드립니다.
다음은 고종황제의 수결이 담긴 헤이그 밀사 임명장입니다.
첫번재 편지는 옥새가 가짜입니다. 두번째 편지는 옥새가 진짜입니다.
어느것이 진짜 편지일까요?
저는 첫번째 편지가 진짜라고 봅니다. '수결'이 있거든요. 1904년에 서울로 쫓겨난 황제에게 옥새가 있을리가요. 옥새를 찍어야만하는 상황이라고 믿었을테니 옥새를 그렸나 봅니다.
그러자, 헤이그 밀사의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하고싶은 쪽에서 내는 기사를 봅니다.
허버트가 일본과 내통한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박사를 싫어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고종 강제퇴위 뒤에도 ‘황제어새’ 사용
이 기사는 Q팀에서 흘려줬나봅니다. 헤이그 밀사가 진짜라는 증거가 발견됩니다. 2019년 3월.
"고종 '내가 살해돼도 특명다하라'"…112년전 헤이그특사 인터뷰
진짜 옥새는 1904년에 다 뺏겼겠죠. 이미 여왕년이 다 가져갔을겁니다.
일제 강점으로 사라진 조선의 '국새'…29점은 어디 있을까
그래서, 1904년 경복궁을 금지(Forbidden)하면서 동궐이 있던 서울로 쫓겨난 흥선대왕과 고종황제는 운현궁으로 유폐되고, 둘째아들이었던 이형(㷩)이 '고종황제'라고 내세워져 꼭둑각시가 된 것으로 봅니다.
대한제국의 역사는 1904년에 끝났음에도 1910년에 끝난것처럼 위조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제국의 지워진 황제 '이 희'를 찾아보았습니다.
고려 황제가 경성(북평)을 떠나 서울로 쫓겨나는 장면.
1904년 2월 23일 타코마 타임스 만평 |
Emperor of Korea라고 달고 계신 이분은 도대체 누구신지? |
Kojong, c. 1907.
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Digital File Number ; chp3b20134)
|
1907년 우리에게 알려진 고종은?
헤이그 특사사건을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 1910년 이태왕으로 격하되어 덕수궁에 유폐되었다고 합니다.
Gojong, the Gwangmu Emperor (1852–1919), the twenty-sixth king of the Korean Joseon Dynasty and the first emperor of the Korean EmpireLibrary of Congress, Washington, D.C. (1904) |
아닙니다.
1. 이름이 다릅니다.
Kojong과 Gojong은 같은 이름이 아닙니다.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 아냐? 하겠지만, 영어권에선 스펠이 다르면? 다른사람입니다.
2. 1904년 만평과, 1907년 초상은 거의 동일합니다. 안경마저도. 하지만 1904년의 Gojong은? 넌 누구세요? 수준.
더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뭘 알고 놀리는건지....
Emperor라고 적고는 대원군의 사진을, emperor라고 소문자로 적고는 고종으로 알려진 사람의 사진을 싣고 있네요.
고종을 찾아야겠습니다. 뭔가 속았는데 속아줄 수는 있지만 속고 살 수는 없죠.
고종 생몰년도 (1852-1919)
저 사진이 찍힌 시기는 1904-1907
1904년이면 52세군요.
생몰년도만 보면 저 자리몽땅이 고종입니다.
대원군의 생몰년도 (1821-1898)
그런데 장례에 아들이 불참합니다. 그리고 장례를 1907년에 다시 왕의 예를 갖추어 다시 치릅니다.
흥선대원군을 고종으로 인식했나봅니다. 안경 어디갔나고요? |
여기있네요 |
그런데 또 다른 역사의 부스러기가 존재하죠.
1919년 왕세자가 일본 공주와 결혼한다 하여 자살한 대한제국 황제 '이 희' |
짜리몽땅고종의 휘는?
휘는 형(㷩), 초명은 재황(載晃)
고종의 친형인 흥친왕의 휘는?
휘는 희(熹), 초명은 재록(載錄)
일단 답부터 드립니다.
지그프리트 겐테가 알현한 고종황제. 1901년경. |
운현궁으로 유폐된 고종황제 '이 희(熹)' |
다음은 고종황제의 수결이 담긴 헤이그 밀사 임명장입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에게 주었던 임명장. 고종대황제 이 희의 확연한 수결 (一心). |
광무원년(1897) 고종 (이형) 이 덕국(독일) 황제에게 보냈다는 편지. 대황제가 고작 덕국황제에게 형제의 의를 표시하고 있다. 수결이 없다. 광무원년 (황제 즉위후)인데 군주어새. |
어느것이 진짜 편지일까요?
저는 첫번째 편지가 진짜라고 봅니다. '수결'이 있거든요. 1904년에 서울로 쫓겨난 황제에게 옥새가 있을리가요. 옥새를 찍어야만하는 상황이라고 믿었을테니 옥새를 그렸나 봅니다.
그러자, 헤이그 밀사의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하고싶은 쪽에서 내는 기사를 봅니다.
허버트가 일본과 내통한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박사를 싫어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고종 강제퇴위 뒤에도 ‘황제어새’ 사용
이 기사는 Q팀에서 흘려줬나봅니다. 헤이그 밀사가 진짜라는 증거가 발견됩니다. 2019년 3월.
"고종 '내가 살해돼도 특명다하라'"…112년전 헤이그특사 인터뷰
진짜 옥새는 1904년에 다 뺏겼겠죠. 이미 여왕년이 다 가져갔을겁니다.
일제 강점으로 사라진 조선의 '국새'…29점은 어디 있을까
그래서, 1904년 경복궁을 금지(Forbidden)하면서 동궐이 있던 서울로 쫓겨난 흥선대왕과 고종황제는 운현궁으로 유폐되고, 둘째아들이었던 이형(㷩)이 '고종황제'라고 내세워져 꼭둑각시가 된 것으로 봅니다.
대한제국의 역사는 1904년에 끝났음에도 1910년에 끝난것처럼 위조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제국의 지워진 황제 '이 희'를 찾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치루트님. 눈에 잔뜩 낀 안개가 걷히는 느낌입니다
답글삭제여왕이 고종을 배신하였다..... 민황후 시해후 '미국백인여인'에게 새장가들었다는 고종께서(그 신문기사가 사실이란 전제하에), 그 황후에게 배신당하신 건가요 ? 사실 배우자와 그출신 외척가문야말로 통치자들이 가장 조심해야하는 안티세력이지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