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마교의 아시아 침공 ; 역사왜곡과 그 근거지 #3

앞포스팅에서 알아본 바 와 같이, 동전의 앞뒷면같은 천주마교와 성리학은 대륙의 남부, 왜구거주지 복건성에서부터 생겨나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1333년경 교황 요한22세는 대륙의 황제에게 '어 거기 우리 선교사들 잘 돌봐줘서 때땡큐' 하고 메세지도 보내준거죠.

1333년 편지쓴거 기록해놓은건가본데 보존상태가 ㅆㅆㅅㅌㅊ ㅋㅋ 진짜는 맞냐?

주자새끼가 나타나서 설친게 1113 - 1200년경이고, 그 사이비교단 새끼들이 세를 불려서 경성까지 가는데 조복(趙復, 1200∼1277), 요추(姚樞, 1204∼1280), 허형(許衡, 1209∼1281) 요렇게 이름까지 나와있는걸 보면 요새끼들 나름 대륙의 자생신부나 뭐 사이비교주쯤 되겠습니다. 그리고 주자의 새끼의 새끼는 1224년에 한반도로 망명했다고 하니, 사실은 대륙에서 겁나게 뚜들겨 맞고 목 짤리고 그러다가 반도로 튄거죠. 저기 이름 적힌새끼들이 드러내놓고 움직일 상황은 아니었을 듯 합니다.

1224년 당시는 '금나라'가 화북지방을 잡고 있는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금나라는 원나라에게 뒷치기 맞고 1234년 멸망당하고 '원나라'가 들어서서 남송을 1279년에 멸망시켰다고 하는데, 왜 주자의 후손들은 1224년에 반도로 도피했을까요?

금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한게 맞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원나라는 '천주마교 변종 백련교도'가 유행한걸로 기록되어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닌듯 하군요.

이게 금나라 강역인데, 금나라는 '여진족' 나라입니다. 아시다시피 여진족은 이성계 부하들.
과연 여진족이 저정도 먹을 판이 된다면 이성계가 금나라 대장 해도 되겠군요.
대륙 저정도 먹을 능력 되면 반도 잡아먹는건 일도 아닌데 왜 '고려'가 멀쩡히 있을까요?
그런데, 이 사이비새끼들이 반도로 튀어서는 성도 바꾸고 본도 바꾸고 이지랄합니다. 원나라의 핍박을 피해서요? 반도에 원래 살던 사람도 그럼 성도 다 바꾸고 본도 바꾸고 그래야겠네?

그게 아니라, 반도로 튀었지만 중앙정부에선 이새끼들 현상수배한거죠. 아무도 못알아보는 동네로 이름바꾸고 잠적한거죠. '사이비종교 교주이하 사파들 현상수배'

얘들이 자기들 본 찾고 성 찾고 한게 1901년, 대륙 망할때 다 되어서야 겨우 신안주씨로 통일합니다. 얘들이 대륙을 말아먹은 공범이란 의미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요.

원-고려의 관계도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구요? 원나라에 한국 여자가 끌려가면 공녀라고 하고 돌아오면 화냥년이라고 했죠? 그런데 고려는 원나라 공주를 데려다 처첩을 시켰는데요? 왕자가 원나라 가 있다가 왕이 돌아가시니 돌아와서 왕이 되는건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원나라를 고려가 통치했을 확률이 더 높죠.

하나더, 원나라와 고려가 합쳐서 일본정벌을 갑니다. 1274년과 1281년. 투입병력은 1차에 2만3천명, 2차에 대륙병 10만에 원병+고려병 4만 도합 14만이 갑니다.

1300년대 일본 인구수 한번 볼까요?

아무리 잘 쳐줘야 1300년대에 800만이 안됩니다. 그런데 원정군으로 14만이 몰려가면 나라가 망한거죠. 그런데, 저 14만과 4만이 태풍을 만나서 다 물로 들어가 죽었답니다. 개그하나요? 2차례에 걸쳐 18만의 인구가 열도로 쫓겨났다고 생각하는게 훨씬 더 타당성 있어보입니다.

당시 인구가 10억을 넘어서 14만정도 물에 넣어도 남은 정예병이 100만 이상이면 모르겠습니다만. 원정공략할 정예병 14만을 물에 넣어버리면, 원나라든 어디든 망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1274년에 4만을 물에다 처 넣고서도 원나라는 1279년 남명을 정복합니다. 곧이어 중국병 10만과 고려병+원병 4만이 이어서 열도로 원정을 갑니다. 뭔가 느껴지십니까?

중국에서 쫓겨난 인구 10만, 반도에서 4만. 도합 14만이 1300년대에 열도로 이주했다고 한다면 열도의 역사가 많이 바뀌어야 정상이겠네요. 1300년대 초반 열도으로 가 봅니다.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망하고 겐무신정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큰 변화가 있었겠죠.

딱 왜구새끼들 + 천주마교새끼들 모여서 발광하다가 고려제국에게 섬멸당하고 남은것들은 전부 열도로 추방했다고 보여지네요.

그래서 멀쩡히 있던 열도의 정치체제도 바뀌고요.

그러면, 여기서 한반도 주변의 고인돌 분포를 봅니다.
전라도에 집중된 고인돌 분포. 왜구 밀집지역지도와 비교하면?
캬 딱 왜구새끼들 모여살던데 + 주자새끼들 도피처에 고인돌이 바글바글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저것들이 왜 쫓겨났는지 설명해주는게 고인돌인듯 합니다.
고인돌은 족장 무덤이 아니라, 인신공양하던 자리 입니다. 인신공양하고 나면? 제삿밥 나눠 먹은겠죠.

왜구들이 믿은 종교는 인신공양을 필요로 하던가, 인육을 주로 먹던가, 둘 중에 하나는 할 듯 합니다. 다 아시겠지만 일본은 인육 종종 먹었죠. 대륙 남부는 '용문객잔'같은 흑점들 널려있었고. 사람고기를 시장에서 팔고 그랬습니다. 사람고기가 쇠고기보다 쌌죠.

저런 인간 이하의 것들을 열도로 다 몰아 넣은게 1300년대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러니, 주자새끼의 손자와 그 자손들이 성도 바꾸고 이름도 바꾸고 본도 바꾸고 해서 열도로 안 쫓겨나고 반도에 살아남으려 했겠죠.

우리가 아는 '소도' 개념에 렙틸개념까지 넣으면 이 부분이 좀 더 부드럽게 설명됩니다.

금나라 지도를 다시 봅니다.
진나라와 고려의 국경선을 보세요.
우리도 아는 천리장성의 위치를 위 지도의 국경선과 비교해 봅니다.
거란이고 여진이고 다 사기치는거고, 그냥 한반도를 성으로 쌓아서 막아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반도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난생신화들, 도깨비 이야기들, 인면조니 치우천왕이니 하는 희한한 괴물들의 이야기들.

지금은 쉽게 받아들이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민족은 반도를 버렸습니다. 렙틸들이 설치는 땅이라서요. 그래서 대륙으로 옮겨가고, 성 쌓아서 막아버렸다는게 제게는 더 쉽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소도'로 도망가면 죄인 잡으러 가지도 않았고, 원래 소도에 살던 사람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았던 거겠죠.

그렇지 않다면, 서울 경복궁터에 해자가 없는것은 전혀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한반도 어디에 해자의 흔적이 있나요?

사람이 살던 땅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나라 이후 'Corea' 지역이 계속 독립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죠.
반도가 소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이 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듯 합니다. 최소한 조총은 튀어 나와야 렙틸에게 우세를 점할테니까요.

그래서, 1300년대까지는 천주마교-왜구 무리가 중원에서 반도와 열도로 추방되었을 것으로 보는것이 타당할 듯 싶습니다.

그런데, 왜구의 거주지는 대륙에만 있는게 아니었죠.
동남아시아 필리핀 - 보르네오 -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살던게 왜구입니다.
이것들이 똘똘 뭉쳐서 1500년대 서양에서 몰려온 제수이트들과 함께 대륙을 침공합니다.
그것이 '임진왜란'. 소서행장이 괜히 십자가 들고 왜란에서 설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일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열도에 있던것들이 아닙니다.
동남아 원숭이들이 왜구였죠. 작은도적놈들. 지금도 저기는 식인 합니다.

식인코드 + 천주마교 = 훌륭한 사탄숭배 컴비네이션.

그러면 이런 컴비네이션이 이루어진게 언제인지 찾아갑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마카오 근처에서 뒈진건 1552년 12월 3일.
위 그림에 잘 나와 있듯이, 말레이시아 - 필리핀 등 인근 지역 선교를 1545년부터 1548년까지 합니다. 그런데 1548년에 武士(부시) 야지로를 세례해 줍니다. 하루이틀 만나서 세례받진 않겠죠. 결국 '무사' 야지로는 동남아에 있던 왜구입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포장되어 있죠.

포르투갈이 광동성 마카오에 발을 들인건 1553년입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설명 ; 위키피디아
마태오 리치 "이마두"가 마카오에 발을 들인건 1582년.
"이마두" 설명 ; 위키피디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전 준비태세
 - 1586년 무렵에 대규모 건조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조선 침공 직전에 전함 천여 척을 이미 확보한 데에 이어서 종전 무렵에는 3천여 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을 보유할 수가 있었고 조선을 침공하기 직전인 1591년에는 사이카이도, 난카이도, 산요도, 산인도, 기나이와 그 동방 일부 지역에 동원령을 내려서 병력 33만을 동원할 준비하였다. -

1586년 5월 예수회의 일본 선교 총책임자인 코엘료는 오사카 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알현해 대환영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히데요시는 코엘료에게 규슈정복과 조선에 출병해 중국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털어 놓았으며, 그 협력도 요청했다. 그리고 만약 조선과 중국 정복에 성공하면 중국 각지에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선교사들을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제로 그 때가 오면 포르투갈 군함 2척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도요토미와 포르투갈의 관계 ; 위키피디아

임진왜란 발발 ; 1592년
임진왜란 ; 위키피디아

이마두의 1592년 위치 - 남경.

이렇게 보면, 임진왜란은 제수이트와 손잡은 도요토미의 대륙침공이 기정사실이 됩니다.

그러면, 당시 도요토미가 전쟁을 지휘하며 손에 들고 있었던 미니맵을 봅니다.
요충지는 빨갛게 잘 칠해둔 히데요시.
그런데 반도의 서울엔 뭐하러 '고려'를 나중에 써 넣고 북경과 남경은 허옇게 수정을 했을까요?
고니시 유키나가 (소서행장)은 부산 - 한성 - 평양성 루트로,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은 부산 - 한성 - 의주 루트로 진격합니다.
그런데 도요토미는 미니맵상 남경보다도 한참 아래쪽부터 진입을 시도하는군요.
광서성 광동성 복건성까지 다 그려놓은 것 같네요. 그렇다면 알려져있는 동래와 부산은 다른곳입니다. ㅎㅎㅎ

부산진성이 있고 동래성이 있는데 말이 안되죠.

다음편에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