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餘
<夫餘>在<長城>之北, 去<玄 >千里, 南與<高句麗>, 東與<相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戶八萬, 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其人序大, 性彊勇謹厚, 不寇 . 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 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 邑落有豪民, 名下戶皆爲奴僕. 諸加別主四出, 道大者主數千家, 小者數百家. 食飮皆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在國衣尙白, 白衣大袂, 袍·袴, 履革 . 出國則尙繒繡錦 , 大人加狐狸· 白·黑貂之 , 以金銀飾帽. 譯人傳辭, 皆 , 手據地竊語.
'부여'는 '장성'(1)의
주1) 장성(長城) ; 苗疆長城
묘강장성은 (또는 남방장성)은 중국 남부에 있는 장성이다. 현재 중국 湖南省(호남성/후난성) 서부 지방의 土家족과 苗族의 湘西土家族苗族自治州(상서토가족묘족 자치주/샹시투쟈족먀오족 자치주)에 위치한다. 長城의 길이는 190km이며 장성의 대부분은 鳳凰縣(봉황현/펑황현)에 있다. 明代 1554년부터 1662년까지 장성 이남을 북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건설하였다. 장성의 높이는 3 미터, 폭은 2 미터이다.
남방장성 (귀주성관광청)
고구려가 묘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글만 잘 읽은 것일 수 있다. 단지 고구려의 위치를 잘못 정했을 뿐. 남방장성은 북방으로부터 묘족을 보호하기 위한 장성이다. 따라서, '부여, 고구려, 읍루, 선비, 약수'는 묘족과 토가족의 집단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부여에 원숭이가 살고 있었단 사실과도 잘 부합한다.
'明國'에 저항하기 위하여 만든 것일지, '明國'이 묘족과 토가족의 나라일지는 스스로 판단해 보자.
주2) 봉황성(鳳凰城)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큰 산성의 하나로, 오골성(烏骨城)이라고 불렸다. 주1)의 남방장성 역시 '봉황성'에서 시작한다.
주3) '티벳'일 가능성이 있다.
주4) 부이족이 부여로 추정된다.
Q sent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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